40대 시사 비평 블로거 ‘진인 조은산’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원사격하는 듯한 내용이 담긴 새 글을 공개했다.
‘진인 조은산’은 4일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 ‘진인 조은산의 기록’에 4000자가 넘는 장문 ‘토리의 일기’를 올렸다. 지난달 26일 ‘페미니즘, 그 너머의 어떤 것들’ 이후 8일 만에 침묵을 깨고 비평 활동을 재개했다.
이번 글을 통해 윤석열 후보 최근 행보를 그의 반려견 ‘토리’ 입장에서 설명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아울러 경선 이후 당 안팎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윤 후보가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극적으로 화해한 뒤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과정을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아래는 ‘토리의 일기’ 전문.(*대화 색깔 구분 토리 윤석열)
내 이름은 토리다. 한때 나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걸식하였다. 철창 안의 내 삶은 피폐했고 지친 나는 안식을 바라고 있었다. 개털 같은 날들이 숱하게 흩어져 내렸다. 긴 기다림의 시간은 고독의 연속이었고 그렇게 다가온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왜 하필 윤석열이었단 말인가! 평범한 인간을 만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대선 후보의 개가 되어 있었다. 이제 나는 영양가가 아닌 영향력을 갖춘 정치견이다.
그러므로 개 사과 논란은 결국 나의 작품이다. 당시 윤석열 캠프는 꽤 어수선해 보였고, 나는 그 사진을 거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순히 촬영에 임함으로써 일종의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내 계략은 보기 좋게 성공하고 만다. 노란 사과와 겹쳐진 내 시커먼 콧구멍이 언론과 포털사이트에 도배가 된 것이다.
정국을 강타한 한 장의 사진으로 한때 인간들은 내 동공 사진까지 확대해가며 시국을 논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윤석열은 급히 널브러지더니 팔다리를 저어가며 울었다. ‘왜 하필 지금이야.. 왜 하필 지금이냐고오!’ 개껌을 씹던 나는 숨죽여 웃었다.
이런 내가 그를 곤경에 빠트린다거나, 혹은 나를 쓰다듬는 손길을 바라며 그를 수고롭게만 하는 건 물론 아니다. 나는 내 나름의 몫이 있다. 나는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안다. 그가 대선 후보로 나설 수밖에 없던 그 수많은 일들을 알고 정치인으로서 그가 당면하게 될 수많은 것들을 안다.
그를 바라보는 충혈된 눈이 있음을, 그를 말하려는 달궈진 혀가 있음을 또한 안다. 그래서 그와 단둘이 남게 되는 그 시간에, 나는 그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개의 눈은 단순하지만 진실하고 또 명료하기 때문이다.
이제 곧 그가 돌아올 시간이다. 엘리베이터가 밀어 올리는 공기압 속에서도 나는 그의 향기를 맡는다. 꼬리가 저절로 흔들리는 것이다. 현관문의 시정 장치가 풀리고 그가 들어선다. 그는 왠지 오늘 지쳐 보인다. 나는 먼저 말했다.
“여어. 어서 오시게. 오늘은 무슨 실언한 거 없는가?”
“....다행히도 없다네. 사실 요즘은 말을 아끼고 있어. 나도 이제 정치인이 다 돼가는 모양일세. 어쨌거나 잘된 일이지. 그래, 자넨 오늘 어땠는가?”
“나야 뭐, 개답게 개 같은 하루를 보냈지. 한낮의 햇살이 그토록 은은할 수 있었던가. 나는 젖은 코끝을 반짝이며 잠이 들고 말았다네. 그리고 한바탕 개꿈을 꾸고 일어나니 시장기가 돌더군. 그래서 건희 양이 마련해준 개밥을 먹고 뉴스를 보았지. 인간의 말이 때론 개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니 무척 재미난 일일세. 아 참, 맥주 있는가? 오늘따라 목이 마르는군.”
문득 갈증을 느낀 나는 그에게 맥주를 요청했다. 냉장고를 뒤적이던 그는 곧 내 밥그릇을 맥주로 가득 채워주었다. 이것은 에일인가, 라거인가. 내 하얀 털처럼 풍성한 거품을 보니 이것은 필시 라거임에 틀림없다. 혀를 담그고 찹찹대며 목을 축인 나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시름이 깊어 보였다. 나는 짐짓 대수롭지 않은 척 다시 말했다.
“자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구먼. 인간 노릇 하기도 벅찬 세상에 대통령씩이나 하겠다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안 그래도 뉴스에선 온통 자네 이야기뿐이더군. 정확히 말하면 자네와 자네를 둘러싼 그 사람들 이야기 말이세.”
그러자 그는 맥이 풀린다는 듯 주저앉더니 넥타이를 풀어 던지고는 힘겹게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이제 말함세. 며칠 전의 일이야. 충청 지역을 방문해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지. 어느 청년이 내게 삼국지의 인물들 중 누구를 좋아하는지 묻더군. 그래서 내가 무어라 답했는지 혹시 아는가?”
“물론 알고 있지. 답변을 회피하고 소설 닥터 지바고를 대신 말하지 않았던가. 굳이 내 생각을 말하자면 아주 잘한 일이네. 만약 자네가 유비를 말했다면 상대 정치인은 자네가 유약한 지도자라 비난했을 것이고, 조조를 말했다면 간악한 자라 비난했겠지. 그러나 정작 자네 마음은 다른 데에 있지 않았던가?”
“자네가 그걸 어찌 아는가?”
“짐작건대 자네는 유비를 말하고 싶었겠지.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이 자네의 마음을 가로막은 거라네. 복룡과 봉추를 모두 얻은 그에 반해, 자네는 김종인과 이준석을 모두 놓친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비애가 스쳤겠지. 자네가 저 스스로 우뚝 설 수 없는 현실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정치 현실이 못내 가슴 아팠겠지. 그래서 자네는 은연중에 닥터 지바고의 예를 든 거야. 그 안에 담긴 시련 속에 자아를 찾아가는 시린 여정을 그리듯이 말이야. 내 말이 틀렸는가?”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내 눈에는 더 이상 자네가 개로 안 보이는군. 자, 한 잔 더 받게나. 내 마음을 알아준 보답일세.”
그는 다시 맥주를 들어 내 밥그릇을 채워주었고 나는 다시 찹찹대며 혀를 놀렸다. 풍부한 맥아 향이 비강 안으로 흘러들어와 나는 아찔했다. 알코올이 가진 위대함은 개나 인간이나 할 것 없이 모조리 제 괄약근을 느슨하게 하는 데에 있다. 나는 부르르 떨며 똥오줌을 지렸다. 뒷다리를 한껏 치켜든 나를 보곤 그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괘념치 말게나. 배변 패드를 미리 깔아두지 못한 내 잘못이 더 클 터이니.”
그리고 나는 물티슈를 뜯어 부지런히 배설물을 훔치는 그를 보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자네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보면 모르겠는가? 젠장, 자네 똥오줌을 치워주고 있잖은가?”
“그 전에 자네는 무어라 말하였는가?”
“뭐, 배변 패드를 미리 깔아두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지. 왜,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가?”
“이보게. 지금 자네는 한낱 개에 불과한 나에게도 맘껏 똥오줌을 지리지 못 하게 한 자신을 책망하며 사과했다네. 그런 자네는 왜 자네가 몸담은 당의 당 대표라는 자가, 그것도 보수 정당의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을 받는 그 자가, 자네와 그 당을 위해 헌신할 그 작은 밑바탕 하나 깔아주지 못하고 복룡, 봉추를 탓하고 있는 건가? 배변 패드 없이 맥주를 마신 내가 술에 취해 똥오줌을 싸질렀듯, 그자 역시 대표 패싱으로 폭탄주를 먹다 술에 취해 이모티콘을 싸지르고 결국 부산으로 튀었는데, 자네는 왜 나에게서만 연민을 느끼고 있으며 또한 왜 나에게만 자존심을 먼저 내세우지 않은 건가?”
“.....”
“자네는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가?”
“나는 사람을 위해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네.”
“정확히 말하면 절반의, 구도 내안의 사람을 위해서겠지. 이 나라는 언제부턴가 분단 안의 또 다른 분단을 겪고 있으니.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에 의해 정치를 하고 있는가?”
“나는 내 신념에 의한 정치를 하고 있다네.”
“더 정확히 말하면 풍화된, 희석된 신념이겠지. 자네도 그동안 정치판을 뒹굴며 깎이고 다듬어졌을 테니. 그렇다면 태초의 온전한 자네를 떠올려 보게. 호사가의 말들을 뒤로 한 채 구도를 떠나, 정치를 떠나, 인간 윤석열의 신념은 지금 자네에게 무어라 속삭이고 있는가?”
“정권 교체에 자존심이 어딨냐며, 가서 얻으라고.”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어디로 가야겠느냐, 부산이냐 제주냐, 여수냐 순천이냐, 소리를 지르다 문득 생각에 잠긴 그는 뭔가 깨달은 듯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아니지! 준표 형을 먼저 만나야지!”
나는 방귀를 뀌어대며 소리쳤다.
“자네! 이제 정치 구백 단이 다 됐구먼!”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나는 코트를 주워들고 현관문 밖으로 사라지는 그를 떠올리며 한동안 낑낑대다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건희 양은 나를 위해 티비 뉴스를 틀어 주었다. 뉴스 채널에서는 그에 관한 소식들이 헤드 라인을 장식하며 연신 보도되고 있었다. 나는 개껌을 씹으며 그것들을 음미했다.
‘윤석열·홍준표, 후보 선출 후 27일 만에 회동’
‘함께 가야만 대선 승리… 홍준표, 윤석열에 조언’
‘윤석열·이준석, 울산에서 극적 만찬 회동 성사’
‘언양 불고기 놓고 전격 만남… 윤석열 “잘 쉬셨나”, 이준석 “고생했지”’
‘윤석열·이준석, 갈등 극적 봉합…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직 수락’
그는 결국 복룡과 봉추를 모두 얻었다. 그가 다시 돌아오는 어떤 날에, 나는 그저 개껌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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