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죽었다.’
엠넷(Mnet) 화제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0(쇼미10)’을 이 한 줄로 정의하고 싶다. 그만큼 힙합 서바이벌을 아이덴티티로 내세운 쇼미더머니 10번째 시즌에서 중심에 있어야 할 힙합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부턴가 ‘쇼미더머니’에서 사회 비판적인 가사, 다양한 스타일의 랩과 플로우 등 힙합을 상징하는 고유의 색을 강하게 표현하기보다 음원 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많은 수익을 내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지나치게 대중성과 상업성을 의식하다 보니 힙합 경연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음원 성적만 중요시하는 가요 프로그램이 돼 버렸다. 회차를 거듭할 때마다 내가 지금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게 맞는지 착각한다. ‘슈퍼스타K’나 ‘쇼 음악중심’ ‘인기가요’의 재탕 느낌이다. 제작진에게 건의하고 싶다. 이참에 지금부터라도 프로그램 이름을 ‘쇼미더머니’가 아닌 ‘슈퍼스타H’로 바꾸는 게 어떨까.
음원미션에서부터 프로듀서 네 팀은 실망감을 잔뜩 안겼다. 그들이 내놓은 곡을 자세히 들어보면 도저히 힙합이라고 볼 수 없다. 벌스부터 랩이 아닌 멜로디를 깔고 시작한다. 훅 부분도 그냥 대중가요의 후렴 같다.
특히 티슬라팀(슬롬, 자이언티)의 ‘트러블(Trouble)’은 너무 대놓고 락이다. 락밴드 트랜스픽션의 ‘Get Show’와 그린데이(Green Day)의 ‘Basket Case’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에이체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 모두 노래를 하고 있다.
코코팀(개코, 코드쿤스트) ‘Wake Up’의 태버는 랩이 아닌 R&B를 하고 있다. 랩 하는 부분을 전혀 들을 수가 없다. 이제 막 유입된 캐쥬얼 팬들에겐 좋게 들릴 수 있겠지만 ‘쇼미더머니’ 초창기부터 힙합을 접해온 리스너들에겐 평범한 대중가요일 뿐이다.
본선 무대도 마찬가지다. 티슬라팀의 자이언티가 피처링에 참여하고 소코도모가 부른 ‘회전목마’ 역시 평범한 대중가요로 들린다. ‘쇼미더머니’ 취지에 맞는 노래가 아니다. 오히려 자이언티의 가창력만 빛났다. 관련 영상에 달리는 댓글도 소코도모보다 자이언티 얘기가 더 많다.
랩은 사라지고 노래 또는 멜로디로 가득해진 곡이 어떻게 힙합인가. 소코도모 벌스 부분도 자세히 들어보면 대중가요 멜로디에 음의 높낮이만 집어넣은 듯하다. 쉽게 설명하면, 일반 가요를 랩 느낌으로 불렀을 뿐이란 얘기다. 저 부분에서 랩처럼 음 높낮이를 구분하지 않고 쭉 부르면 단순한 가요가 된다.
‘싱잉랩’으로 포장하지만 그건 핑계에 가깝다. 교묘하게 노래로 랩 실력을 덮어버리는 느낌이다. 그레이노마팀(그레이, 송민호)의 비오도 2차 예선에서 ‘Counting Star’라는 사실상의 ‘노래’를 불렀다. 벌스부터 멜로디를 깔고 시작했는데 그 이후 사람들은 비오가 톤이 좋고 노래를 잘 부른다는 말만 하지, 랩을 잘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싱잉랩으로 자신의 실력을 덮어버리고 싶은 래퍼가 있다면 ‘슈퍼스타K’나 다른 오디션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길 추천한다. 그곳에서 자기가 그토록 원하는 ‘노래’를 맘껏 부르길 바란다. 더 이상 ‘쇼미더머니’에 나와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 말아달라. 래퍼라면 랩을 하고, 노래가 하고 싶으면 아이돌이 돼라.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한들, 대중가요와 힙합의 경계가 이렇게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과거 세대부터 힙합을 대표해 오던 래퍼들조차도 대중가수들과 자신들을 구분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힙합 음악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들을 대중가수들과 철저히 분리해 왔다.
허나 현재 ‘쇼미더머니 10’에 출연하는 래퍼들은 정체성을 잃은 듯하다. 정확하게 따지면 프로듀서들부터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음원 차트에서 더 높은 성적을 내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점점 대중적인 곡을 썼다. 그러는 사이 힙합과 멀어졌다.
만약 음원 수익을 위해 제작진이 그런 방향을 제시했다면 왜 프로듀서 중 단 한 명도 반기를 들지 않았을까. 그들 역시 결국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갔다고밖엔 볼 수 없다. 정말로 순수한 힙합 정신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다면, 애초 대중적으로 변질돼 가는 ‘쇼미더머니’에 참여하면 안 된다.
이제라도 ‘쇼미더머니’ 제작진은 결정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힙합의 본질을 해치지 말고 프로그램명을 바꾸길 추천한다. 내년에도 싱잉랩이 판치는 무대를 꾸민다면 힙합이 설 곳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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