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 칼럼]을 시작하며.
노산(老産). 듣기 거북한 단어임엔 분명하다. 처음 이 칼럼을 연재하기로 마음먹을 때도 걱정이 앞섰다. 괜스레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칼럼의 당사자라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진 않을까.
하지만 언론에서도 쉬쉬하고, 학교(공교육)에서도 제대로 된 노산 교육을 하지 않는 현실에 당당히 맞서기로 했다. 나라도 이런 칼럼을 쓰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노산의 심각성을 영원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연재하는 칼럼 덕분에 조금이라도 데이터에 기반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도전은 성공이다.
■노산에 무지한 한국인들
요즘 길거리를 가다 보면 30대 후반 여성이 갓난아기를 안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심지어 옆에 있는 남편은 최소 40대는 돼 보이는 용모다. 두 사람 사랑의 결실을 부정하려는 마음은 단 한 줌도 없다. 다만 그런 가족 형태를 보면서 가슴 한 켠 씁쓸한 구석을 지울 수 없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으니 늦은 출산을 했으리라.
그렇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건 '한국인들의 노산에 대한 무지'다. 의학적으로 여성의 '노산 기준'을 만 35세로 본다. 30대 초반부터 노산이 시작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나, 만 35세에도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만 30세를 노산 기준으로 잡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인들이 노산에 무지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위의 사례에서도 봤듯이, 30대 후반~40대 초반에 무리하게 임신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여성이 이 나이가 되면 자연임신 확률이 20대 초중반~30대 초중반과 비교해 현저히 낮아진다. 이 경우 인공 수정을 통해 임신하려고 한다. 자기 몸이 늙었다는 사실은 잊은 채 무리하게 임신을 시도한다.
개인의 가치관이기 때문에 그 마음은 존중한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나이대 임신 및 출산은 산모와 곧 태어날 아기 모두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진다.
■ 임신과 출산은 내가 원하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한국 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면 아무 때나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이건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남자는 신체 구조상 여자와 달라 이 개념에 훨씬 무지할 수밖에 없다.
여성의 가임기(여성에게 생식 능력이 있는 기간)는 정해져 있다. 냉정히 말해서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아무 때나 임신하고 출산할 수 없다. 늦게 임신하면 그만큼 몸의 회복이 더디고 태어날 아기의 건강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노산으로 자폐아, 기형아, 다운증후군 아기가 태어난다면 가장 큰 짐을 떠안는 사람은 산모 본인이다. 스스로 그 위험에 뛰어드는 셈이다.
20대에 출산했다고 해서 아픈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노산일 경우엔 그 확률이 훨씬 더 올라간다. 확률을 낮추자는 얘기다. 위험 부담을 알았다면 그 확률을 최대한 낮추자는 거다.
스스로 그 위험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면 낮춰야 한다. 결국 노산으로 발생할 아픔을 본인이 다 책임져야 하는데도 굳이 뛰어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 개인 사정이 있다지만, 과학 및 의학적인 입장에서 그 사정까지 다 이해해 줄 수는 없다. 철저히 과학적인 데이터에 기반해서 보면 30대 후반~40대 초반 임신 및 출산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낮출 수 있다면 낮춰야 하는 게 위험 부담이다. 아기를 낳겠다면 최대한 빨리 낳아야 산모 본인도, 아기도 건강하다. 부정하겠다면 말리지 않는다. 본인의 결정에 따른 결과와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기에 제삼자는 관여하지 않겠다.
이럴 때마다 반박하는 주장으로 "내 주변 어떤 언니는 40대에도 아기 잘만 낳았다"가 나온다. 일반성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예외를 들이밀며 "그 의견은 틀렸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도 예외의 사례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텐가.
축구선수 이동국(44)이 40대 초반까지 현역 선수 생활을 했다고 해서 모든 축구선수가 40대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축구선수는 대부분 30대 중반을 기점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 이게 일반적이다. 이처럼 예외의 사례를 제시하며 일반성과 범주화를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도 낮은 확률에 희망을 걸며 살아가길 바란다.
주변 언니가 40대에 애를 낳았다고 해서 본인도 그 나이에 애를 낳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일반적이고 대중화됐다면 노산이란 말도 세계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40대에도 출산이 가능하다고 독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항상 일반성과 범주화에 대한 생각이 우선되길 바란다.
다음 칼럼에선 노산에 따른 여러 후유증과 합병증에 관해서 얘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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